독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독서의 계절 가을

오비루 2017. 9. 2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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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독서의 계절이 슬슬 다가오니 제 손과는 같은 극성을 지니던 책들이 N극과 S극이 되어 만나기 시작하더군요...
이 책도 앞서 리뷰한 것과 비슷하게 집안 어느 구석에 박혀있던 책이었다. 중학교때 무슨 이유에선가 구매를 하였지만 당시에는 책 읽기에 흥미가 하나도 없던 나는 지금의 나를 위해 고이 타임캡슐에 보관해 두었었나봐요..

'박완서' 작가님의 이름은 너무나 유명하여 알고 있었지만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소설을 읽어 본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역시~ 유명하신 분의 필력이 누구(나...?)와는 다르게 너무나 뛰어나셔서 왜 진작에 이 책을 읽으지 않은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하나하나 마다의 몰입도도 남달라 저처럼 글 읽기 싫어하던 사람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문장이 눈에 알아서 하나씩 박혀줍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이 '싱아'라는 단어의 뜻은 바로


이렇게 생긴 꽃으로 줄기와 잎에서 신맛이 나며 날로 먹을 수 있는 식물 이라고 한다. 이 꽃은 작중 주인공이 어린시절 시골에 살며 산에서 입이 심심할때 야금야금 먹는데 마치 현대에 들어서 우리가 아이셔 나 새콤달콤을 먹는 느낌으로 먹는거 같았다.


이제 본문으로 넘어와, 이 책은 오직 작가의 어린시절 기억을 중점으로 쓴 자서전에 가까워 보이지만 중간 중간 사라진 기억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지어내서 썼다고 하니 소설이라고 표현은 해두었다.
저는 20세기가 끝나갈무렵에 태어난 사람으로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에 대해서는 여느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교과서 혹은 박물관, 영화로밖에 접할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 소설 속 1인칭 시점으로 바라본 일제강점기, 6.25 전쟁은 역시 상상이상으로 힘든 시기였음을 작가가 직접 말해주는 기분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황해북도 박적골이라는 시골에서 자란 주인공은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자랐습니다. 겉으로는 엄하지만 속은 따뜻하신 할아버지의 사랑받으며 성장하였고 학교에 입학 할 나이가 되자 항상 '신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과 높은 교육열에 서울로 진학하게 됩니다. 이후 주인공은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소설가이자 교사였던 박노갑 선생님의 도움으로 작가의 꿈을 키워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난 박완서 작가는 본인이 쓴 책을 엄마가 읽는 일이 처신을 잃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엄마가 집에 방문하기 전 제일 먼저 준비하는 게 본인 책을 서가 젤 높은 층에 책 등이 보이지 않도록 반대로 꽂아 놓는 일을 한 것이다. 

재밌게도 엄마 또한 딸이 써본 책이 궁금할 법도 한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읽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은 받아봤지만 헌정한 적은 없다고 했다. 바로 이어 나오는 내용을 얘기하자면, 한번은 동아일보에 연재가 끝나고 어느 잡지사에서 나하고 엄마를 인터뷰 요청하여 화곡동으로 갔다. 엄마는 처음 하는 인터뷰임에도 잘 하셔서 속으로 여간 자랑스럽지가 않았다. 인터뷰 마무리 단계에서 기자가 혹시 따님이 쓰는 신문 연재소설 읽었냐는 질문에 '우리도 그 신문을 보니까요. 원, 그것도 소설이라고 썻는지' 라고 대답을 하였다. 

이 평은 문득 문득 나에게 상처가 되었고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말자 는 다짐을 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저도 남에게 피해가 가거나 상처가 될 듯한 말은 최대한 걸러서 말하는 편이라 위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끄덕거린 기억이 떠오르네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연관성 이라 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과연 내가 살아온 인생을 글로 적어보라 한다면 이 책 한 권의 분량 아니 아니 그것의 반의 반 분량 만큼의 이야기 거리라도 기억하고 있을까? 어쩌면 난 기억하지 못 하는 게 아니고 그냥 하루 하루 무의미하게 보내 왔던 건 아닐까..

지금 문득 떠올른 한 마디가 있다.

나는 의미있게 오늘은 보낸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언젠가 듣길 바라며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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